뒷모습 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아버지의 기억. 치열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영정사진 속 아버지와 마주앉는다.
오늘도 야근. 몰아치는 일들에 묻혀 사는 성공한 청년, 치열.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. 무엇을 하고 싶은 지, 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치열의 일상. 철옹성처럼 단단하던 일상이 무너져 버린 건 아버지의 부고 소식 때문이다.
기차마저 머물지 않는 고향역. 붐비던 골목은 한산한 바닷바람만 뛰어다닌다.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서 있는 건물 하나. “정 사진관”
아버지가 남기고 간 것은 적지 않은 빚더미와 정 사진관, 그리고 은열의 연락이다.
은열은 치열의 쌍둥이 누나다. 어릴 적 뛰어난 운동신경에 골목대장을 도맡아했다. 그런 은열은 엄마의 희망이었다. 못 다한 꿈을 이루어줄 아바타였다. 엄마는 은열을 데리고 외국으로 발길을 돌렸다.아버지와 치열만 남겨 둔 채로, 고향을 떠났다. 원하지 않았던 생이별은 20년 이란 세월을 품었다. 푸르른 산 대신 회색 빛 마천루가 병풍처럼 서 있는 고향. “돌아올 수 있는 곳이 고향이지” 아버지가 벗어나지 못했던 이곳의 이유다.
켜켜이 묵혀져 있던 기억들이 치열을 반기지만, 치열은 이를 외면하고 돌아서려 한다. 켜켜이 쌓인 그리움에 은열은 가슴이 벅차지만, 은열은 기대한 만큼 상처를 받는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