한밤중에 울리는 휴대폰 진동에 잠이 덜 깬 채 전화를 받는 연하. 시끄러운 소리 너머로 어떤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. 다짜고짜 연하의 중고 사이트 닉네임 에누리사절님이 맞느냐고. 연하, 밝은 화면에 눈을 찌푸리며 핸드폰 시계를 보면 이제 곧 새벽 2시가 되어가는 시간. 연하가 누구냐고 물어도 그녀는 대답대신 도리어 연하가 사는 곳이 홍대가 맞는지 홍입 9출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확인한다. 잠결이라 엉겁결에 그녀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하는 연하. 아니 내가 왜 대답을 하고 있는 거야. 그래서 누구시냐고요. 그제 서야 전화 건 목적을 얘기하는 그녀. 중고 사이트에 연하가 10만원에 올린 지미추 빨간 구두를 사겠다는 것. 아니 근데 시간이 몇 신데, 이 오밤중에... 두 배로 쳐 주겠다는 그녀. 내일 다시... 세 배. 아니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라... 현금, 40 드릴게요. 쌩~ 어느새 방에서 사라져 버린 연하, 빈 침대만이 덩그러니. 현금 40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.
연하가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 와 보면 기다리고 있는 한 여자. 그 실루엣이 익숙하다. 첫사랑 그녀 수진이다. 진한 화장에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그녀. 한 쪽 굽이 부러진 구두를 신고 있다. 우연찮게 다시 만난 연하와 수진은 지미추 빨간 구두를 통해 두 사람의 찌질했던 과거를 하나씩 들춰낸다.